드로잉은 본래 도구를 이용해 선으로 세상의 일부분을 화폭에 기록하고 묘사하는 예술 행위로 알려졌다. 그러다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이 남성의 소변기를 작품화한 이후, 개념미술이 정립되면서 사람들은 아이디어나 과정도 예술이라 여기는 창작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기록과 묘사의 목적으로 이용됐던 드로잉의 고정적인 관념의 범위도 확대되어 추상적인 이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 찰스 셰든 Charles Shedden a.k.a OWVBICS 의 드로잉도 마찬가지다. 그는 다양한 미술 형식에 관심을 갖고 이미 존재하는 시각적 형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의 작업은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묘사하기 까다로운 성질을 지닌다. 때로는 사소하고 심오하며, 또 어느 때는 사실적이다가도 추상적으로 보인다. ‘드로잉 어텐션 Drawing Attention’을 통해 선보이는 전시 <이미지제작 실험분석집: The Calculator and Die> 또한 이런 양가적 성질을 지닌다. 그리고 이는 작가의 회화적 실험을 통해 재정의한 드로잉의 개념과 인상의 집합체다.

<이미지제작 실험분석집: The Calculator and Die>은 작가가 드로잉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개념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 접근이다. 먼저, 셰든은 드로잉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기위해 미적인 가치를 뒤로하고 주관적인 표현을 완전히 배제했다. 펜 또는 색연필로 섬세하게 그려진 색선들로만 채워진 ISISM이 바로 그것이다. ISISM은 셰든이 창안한 새로운 미술 개념이다. 이를 작품화하기 위해 작가는 어떠한 대상도 묘사하지 않고 오직 선의 반복으로만 이루어진 구조를 평면적인 화면 공간에 배치했다. 여기에는 통상적인 구상주의 회화는 본질이 실존하지 않는 가시적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사상이 깃들어있다. 이는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 La trahison des images 에서 ‘화면 속에 있는 파이프는 진짜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마그리트의 개념에 덧붙여 작가는 수직⋅수평선이 교차하고 쌓이면서 생기는 공간과 점이야 말로 화면 속에 실재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ISISM 작품을 확대해서 마주하면 실재하는 작은 공간들을 확인할 수 있다. ACTUALISM은 ISISM 이후에 나온 하위 개념이다. 여러 선의 엇갈림을 통해 발견된 공간이 또다른 무수히 많은 선으로 덮여 있다. 빈 곳이 사라진 화면에는 이제 교차점만이 남게된다. 작가는 늘 새로운 안을 제시해 이미지와 실재의 차이점을 질문한다. 결과적으로 이 질문을 통해 일상의 시선 끝에 닿는 모든 화면의 본질을 파악하도록 유도한다.

셰든이 드로잉과 페인팅 구별법에 대해 논평하고자 고안한 두 번째 드로잉 기법은 인상부터 작업 과정까지 많은 부분이 ISISM 그리고 ACTUALISM과 차이를 보인다. 작가는 드로잉과 페인팅을 구분 짓는 방법론으로 물감을 섞거나 붓을 사용하는 흔한 회화적 행위의 유무를 제안한다. 이 작업들은 직접 제작한 드로잉 도구에 물감을 주입후 화면 위에 흘리는 행위로 모양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특별한 의식 없이 본다면 그저 물감을 이용한 페인팅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셰든에게는 명백한 드로잉의 범주에 있는 작품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물감을 섞거나 붓을 사용하는 흔한 회화적 행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작가의 기존 초상 페인팅 작품과 비교해서 감상했을 때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작품을 서로 대조해가며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간극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다양한 미술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작품 연구에 노력을 기울이며 탐구하는 과정에서 저지르는 실수가 작가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셰든은 말한다. 그의 작품에도 그가 추구하는 관념과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뛰어난 예술적 역량이 무색하게도 셰든의 작업과 작품은 국내 갤러리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미지제작 실험분석집: The Calculator and Die> 전시가 작가와 국내 관람객을 잇는 계기이자 그의 관념과 실험에서 우러나온 드로잉에 관한 발견, 그리고 이론을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